기사 / 한경비즈니스

장윤기 사건으로 본 믿음의 '등가교환'

2026.07.25. 한경비즈니스에 법무법인 YK 국고은 변호사의 기고문이 게재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력구제를 금지한다. 내가 나를 구하는 함무라비식 해결 대신 국가가 당신의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이다. 헌법 위에 법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행정부를 구성하고, 높은 기준으로 인재를 뽑아 주기적으로 훈련시키며 그 대가로 세금을 걷는다.

이 교환의 전제는 단 하나, 공권력이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 신뢰를 어긋나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작은 일이다.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판단을 법에 맡기려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법을 신뢰하지 않고 억울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의아하게 느껴지곤 했다. 때로는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으로 읽히기도 했다.

지금 일하는 강남은 주말이면 집회로 어수선하고 전에 일하던 여의도는 매일 누군가 거리에 나와 있었다. 혼자 조용히, 홀로 악을 쓰며, 때로는 여럿이 한목소리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외친다. 지나가던 나는 대개 비슷한 생각을 했다. “경찰에 신고해도 안 되는 것이면 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닐까?”

법을 공부하고 법을 다루며 필자 또한 법 안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법으로 움직이는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결과라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장윤기 사건은 나의 믿음이 틀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에는 친족 특례가 있다. 아들의 범죄 증거를 인멸한 아버지는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부모라면 제 자식이 범죄자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이 특례를 수사 권한을 가진 자에게까지 그대로 적용하면 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데 있다.

국가가 부여한 수사 권한을 가진 자들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쉽게 닿는다. 자력구제를 금지한 국가가 대신 피해자를 돕고, 가해자의 행위를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처벌을 내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를 돕기 위한 그 수사 권한이 도리어 가해자를 위해 쓰였다.

수사 권한을 가진 자에게 증거란 일반인의 증거와 차원이 다르다. 일반인은 가족이 두고 간 일기장 한 권을 버리며 전전긍긍하지만 수사기관은 정작 중요한 것이 일기장이 아님을 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 안다. 범죄를 은폐하는 방법을 안다.

증거인멸죄의 친족특례 자체는 인간의 본성에 맞는 자연스러운 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법이 더 정교하게 설계되었어야 함을 경험으로 알려주었다. 알게 된 이상 그냥 두는 것은 작은 균열이라며 지나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외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이번 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중에는 정말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도, 그저 떼를 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202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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